김소연 시인의 시를 좋아합니다. '사랑'보단 '연모'라는 말이 적확할 감정에 빠져있던 시절, 『수학자의 아침』 「오키니와, 튀니지, 프랑시스 잠」 을 읽었습니다. '모든 걸 시시한 듯 보는 눈'에서 멋을 느끼던 시절에는 『눈물이라는 뼈』 「투명해지는 육체」 을 곱씹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유독 사랑했던 구절을 굳이 밝혀보면, '리라는 자명한 실패를 당신은 사랑이라 호명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돌아서서 모독이라 다시 불렀다'로 시작해 '수 북 하 게 쏟아져 내'리는 부분입니다. 읽는 만큼 시가 닳는다면 카세트테이프가 늘어지듯 벌써 잔뜩 뭉개져있을 텐데요. 다행히 시는 그러지 않아서, 그래서 마음껏 읽어도 돼서 참 감사한 일입니다.

그녀의 글을 읽고 또 읽는 일은 그녀의 글을 리듬삼아 장단에 맞춰 들리는대로 느껴지는대로 춤사위를 자아내는 일 같습니다. 그녀의 글을 좋아한다는 말은 다시 말하면 그녀가 풀어내는 이야기가 제가 참 좋아하는 리듬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요샌 그녀의 산문집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 를 읽고 있는데요, 역시나 한번에 후루룩 넘겨버리기보단 때때로 맛 좋은 와인을 입에 머금고 혀를 굴리듯 잠시 머무르게 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음미하듯 읽다보니 다음에 다시 또 들릴 곳을 접고 밑줄 그으며 표시해두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그 가운데 한 부분을 필사했습니다.


오래전부터 제 글씨는 제 눈에 참 부끄럽게 보여서 끄적이는 낙서 외엔 좀처럼 필사를 하지도, 사진으로 남기지도 않게 됐는데, 미션 덕분에 손으로 쓰는 행위로 글을 조금 더 제대로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글씨가 조금만 더 봐줄만 했다면 책에 밑줄을 긋는 대신 마음을 잡아둔 구절을 기록해두는 노트를 만들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드네요. (^^)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모쪼록 주변에 그리고 자신에게 김소연의 글을 만나보길 추천하는 하루가 되시면 좋겠습니다. 행복하고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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