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떠오르면서도 아득하다. 무너진 컨디션은 생존에 필요한 감각 외엔 모두 흘려보내려는 듯 파라핀을 묻힌 손가락처럼 오감을 무디게 만든다. 이런 때에 돌아보는 시간은 기억이 아무리 생생하게 남아있어도 이렇다 할 감흥이 쉬이 일지 않는다. 글을 적는 데에 있어서 이런 상태가 참 아쉽다.

맛이 어땠더라. 약간은 억센 식감이었던 것도 같고, 소스는 적당히 달고 짰던 것도 같다. 입맛을 돋구면서도 특출난 맛은 아니어서 오랜만에 만나 나누는 대화를 방해하지도 않았다고,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빼곡히 들어찬 꽃잎은 새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근사한 그림을 만들어냈다. 걷다가 서서 고개를 들면 밤 하늘을 수놓은 별처럼 한 낮의 하늘을 재잘거리는 꽃잎이 어여쁘게 장식했다. 햇살은 제법 뜨거웠는데 그때마다 바람이 늦지 않게 불어와 달아오르기엔 이른 열기를 식혔다.

사진은 생생한 기억을 발판 삼아 그날, 그 시간으로 데려다주는 힘이 있다. 그러선지 이날의 사진을 보면 반가운 웃음이, 다정한 인사가, 여깨를 겯는 걸음이 재잘재잘 들려온다. 분주한 소란이 꼭 봄을 닮았다. 겨우내 고요하게 숨 죽이고 있던 앙상한 나뭇가지에 숨겨진 그런 분주함. 웅크리고 걸음을 재촉하느라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지나쳤던 메마른 가지 그 속에서 남몰래 치열하게 누구보다 바쁘게 생명을 나르고 있던 그런 소란함.

봄이 어여쁜 건 꽃이 예뻐서만이 아니다. 드디어 일궈낸 그 '피어남'이 대단해서 이다지도 어여쁘게 볼을 밝힐 수 있는 거겠다.


봄 꽃을 닮아야겠다. 시간이 흘렀다고 봄이 오는 게 아니라 자리를 지키고 제 몫을 다해 살아냈기에 봄 다운 봄을 펼칠 수 있는 것일 테니까. 근 2주 휴일 없이 지내느라 딱 죽겠다 싶지만 기약된 '책을 출간해 봄'을 향해가는 이 시간을 겨우내 가지처럼 견뎌내보자.

+ Recent posts